기획서 발주 후 실무 작업 3종 (테이블 구조, 텍스트 작업, 잠깐의 휴식)
안녕하세요. '호랭이 물어갈 기획놈들' 입니다.
기획서 발주와 초반 일정 회의가 끝났다고 해서 기획자의 업무가 끝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타 부서가 요리할 수 있도록 식재료를 다듬는 '테이블 지옥'이 시작됩니다.
발주 직후 기획자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챙겨야 할 실무 3가지를 16년 차의 시선으로 짚어드립니다.
더미 데이터 입력
기획자들이 기획서 발주를 마치면 가장 많이 하는 치명적인 착각이 있습니다.
이제 내 손을 떠났으니 프로그래머가 결과물을 가져올 때까지 멍 때리고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무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보통 데이터 테이블의 뼈대(구조)는 사수나 프로그래머가 엔진 로직에 맞춰 미리 세팅해 줍니다.
| <그림 1. 데이터 구조 설계 예시> |
신입이 해야 할 첫 번째 임무는 그 저 위의 껍데기 테이블 구조에 자신이 기획한 내용의 수치들을 일괄 데이터 화 시켜 테이블에 숫자 및 문자로 꽉꽉 채워 넣는 것입니다.
'엑셀' 또는 '회사 전용 데이터 툴'을 열고 아이템 ID, 기본 스탯, 확률 수치 등을 개발팀이 테스트 진행하며 개발할 수 있도록 테스트 케이스에 맞춰서 실수 없이 입력해야 합니다.
이 기초적인 데이터 입력 과정에서 오타를 내거나 컬럼을 밀려 쓰면, 프로그래머가 테스트를 돌릴 때 클라이언트가 뻗어버리거나 메신저 또는 조용히 자리로 찾아오는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합니다.
기획서의 화려한 아이디어보다 중요한 것은, 타 부서가 즉시 요리할 수 있도록 식재료(데이터)를 완벽하게 손질해서 테이블에 올려두는 꼼꼼함입니다.
발주가 끝났다면 마우스에서 손을 놓지 말고 즉시 데이터부터 밀어 넣으십시오.
스트링 테이블 작업
더미 데이터 입력으로 시스템이 굴러갈 뼈대에 살을 붙였다면, 그다음으로 챙겨야 할 것은 유저의 눈에 직접 보이는 '텍스트'입니다.
게임 내에 들어가는 모든 시스템 메시지, 아이템 이름, NPC 대사, UI 버튼의 이름들은 절대 클라이언트 코드에 직접 하드 코딩하지 않습니다.
| <그림 2. 스트링, 랭귀지 테이블 예시> |
대신 '스트링 테이블(String Table)' 혹은 '랭귀지 테이블(Language Table)'이라고 불리는 텍스트 전용 테이블 사용법에 맞춰 기입해야 합니다.
"강화에 성공했습니다."라는 단순한 문장 하나도, 고유한 텍스트 ID 값을 부여하여 테이블에 정확하게 추가하는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제발 동일한 텍스트가 버젓이 사용되고 있는데 새로 텍스트 키를 발급해서 사용하지 마세요! 국내라면 모를까 해외로 나가게 되면 그 텍스트 하나가 바로 번역 비용으로 넘어가기에 무조건 테이블을 싹싹 뒤져서 동일한 텍스트에 각기 다른 키가 발급 되어 있다면 그런 부분을 미리 사수 또는 상급자 분께 이야기해서 추가적인 비용이 나가는 것을 막아보세요.
또한 시스템 기획자는 자신이 설계한 콘텐츠 안에서 유저 분들에게 보여지는 모든 상황의 텍스트 키값을 미리 기획서에 넣어서 개발을 진행해야 일이 수월하게 풀립니다.
물론 개발자가 UI 작업 시 텍스트가 비어 있는 곳에 미리 키값을 입력하고 채워 넣어 달라고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단 여러분들이 먼저 키 값과 텍스트를 완벽하게 세팅하는 것이 자신의 평판도 높이고 저 사람과 일하기 정말 편하다는 좋은 미담들이 들려올 것 입니다.
잠깐의 휴식 (다음 기획 준비)
엑셀과 사투를 벌이며 더미 데이터와 스트링 테이블 입력을 무사히 마쳤다면, 드디어 기획자에게 '잠깐의 휴식'이 찾아옵니다.
프로그래머는 코드를 짜고 아트 팀은 리소스를 깎고 있으니, 물리적으로 기획자가 당장 불려가거나 문서를 고칠 일이 잠시 멈추는 진공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사내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하며 내가 기획한 시스템이 어떻게 구현될지 상상하는 이 시간은 실무에서 맛볼 수 있는 정말 꿀 같은 타이밍입니다. (물론 신입 내지는 신규 입사 기획자에 한합니다.)
하지만 16년 차 실무자로서 뼈 아픈 팩트 폭행을 하나 남기자면, 이 달콤한 휴식은 길어야 반나절을 넘기지 못합니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던 신규 개발 중인 게임이건 일정은 톱니바퀴처럼 무자비하게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지금 발주한 시스템이 한창 개발되는 동안, 기획자는 이미 다음 달 혹은 다음 분기에 들어갈 완전히 새로운 '다음 업데이트 기획서' 작성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진정한 프로 기획자는 이 짧은 휴식 시간에 멍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 전투를 위해 레퍼런스 게임을 분석하고 새로운 기획의 뼈대를 구상하며 호흡을 가다듬습니다.